속초 여행의 즐거움은 미식에 있지만, 유명 맛집의 끝없는 대기 줄에 지쳤다면 주목해야 한다. 관광객으로 붐비는 곳을 피해 현지인들이 일상적으로 찾는 진짜 맛집 3곳을 엄선했다. 투박한 장칼국수부터 옛날 방식 그대로의 물회까지, 속초의 깊은 맛을 느낄 수 있는 숨겨진 명소를 소개한다.
닭강정 박스를 들고 서성이는 여행자가 되지 않기 위하여
속초 중앙시장에 들어서면 마치 유니폼처럼 모두가 똑같은 닭강정 박스를 들고 다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물론 그 맛은 훌륭하고 여행의 상징과도 같지만, 가끔은 그런 생각이 든다. 과연 이 도시의 사람들도 매일 저 닭강정을 먹고 저 물회 집에서 줄을 설까.

여행이 주는 가장 큰 묘미는 낯선 도시의 일상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화려하게 포장된 관광지 식당이 아니라, 옆 테이블에서 들려오는 사투리를 배경음악 삼아 투박하지만 진실된 한 끼를 먹는 것 말이다.
나는 속초를 찾을 때마다 스마트폰 검색보다는 택시 기사님이나 숙소 사장님에게 슬쩍 물어보곤 한다. 오늘은 그렇게 알게 된, 인터넷 검색 상단에는 잘 뜨지 않지만 점심시간이면 인근 직장인들과 주민들로 꽉 차는 진짜 속초의 맛집들을 이야기해보려 한다.
쫄깃한 소라와 걸쭉한 국물의 조화 왕박골식당
장사동의 한적한 주택가에 위치한 왕박골식당은 아는 사람만 찾아가는 장칼국수 전문점이다. 속초에는 유명한 장칼국수 집들이 많지만, 이곳은 독특하게도 소라(참골뱅이)를 넣어주는 것으로 유명하다.
일반적인 장칼국수가 멸치 육수 베이스에 고추장을 풀어 텁텁하면서도 구수한 맛을 낸다면, 이곳의 국물은 해산물이 들어가 훨씬 시원하고 깊은 맛이 난다. 숟가락으로 국물을 떠먹을 때마다 쫄깃하게 씹히는 소라의 식감이 별미 중의 별미다.

특히 이곳은 면발이 굵직하고 투박하다. 세련된 기계면이 아니라 손으로 썰어낸 듯한 울퉁불퉁한 면발이 입안 가득 들어올 때 느껴지는 포만감이 상당하다. 비가 오거나 바닷바람이 차가운 날, 이곳의 뜨끈한 국물 한 그릇이면 온몸이 녹아내리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관광객보다는 현지 어르신들이나 가족 단위 손님이 더 많이 보인다. 화려한 인테리어는 없지만, 낡은 간판과 소박한 내부에서 느껴지는 세월의 흔적이 오히려 음식의 맛을 더 깊게 만들어준다.
옛날 방식 그대로 뼈째 썰어내는 송도물회
속초의 물회라고 하면 으레 거대한 그릇에 전복, 해삼, 멍게가 산처럼 쌓이고 살얼음 육수가 가득한 비주얼을 떠올린다. 하지만 속초항 근처에 위치한 송도물회는 그런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다. 이곳은 오직 가자미 세꼬시(뼈째 썰기) 하나로 승부하는 곳이다.
이곳의 특징은 육수가 흥건하지 않다는 점이다. 자작하게 깔린 국물에 채 썬 오이와 배, 그리고 듬뿍 들어간 가자미 회를 쓱쓱 비벼 먹는 스타일이다. 처음에는 회무침처럼 즐기다가 나중에 물이나 얼음을 넣어 밥을 말아 먹는 것이 정석이다.

요즘 유행하는 물회들이 과일 향이 강하고 단맛이 도드라진다면, 송도물회의 맛은 투박하고 직관적이다. 고추장과 식초의 새콤달콤함이 뼈째 씹히는 가자미의 고소함과 어우러져 중독성 있는 맛을 낸다.
창가 자리에 앉으면 바로 앞에 정박해 있는 어선들과 바다가 보인다. 으리으리한 건물의 기업형 물회집이 아니라, 바닷가 앞 식당에서 젓가락질 소리를 내며 먹는 이 투박한 한 끼야말로 항구 도시 속초가 가진 진짜 매력이 아닐까 싶다.
자극적인 웨이팅 대신 속을 달래주는 하얀 위로 초원순두부
속초의 아침을 여는 음식으로 순두부만 한 것이 없다. 학사평 순두부 마을이나 유명 관광지 근처에 가면 새벽부터 긴 줄이 늘어선 풍경을 쉽게 볼 수 있다. 하지만 배고픔과 기다림에 지쳐 정작 두부의 고소함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허겁지겁 먹고 나오는 경우가 다반사다.
초원순두부는 그런 소란스러움에서 한 발자국 물러난 곳에 위치해 있다. 관광객들에게 널리 알려진 핫플레이스보다는, 인근 골프장을 찾은 사람들이나 현지 주민들이 아침 해장을 위해 조용히 찾는 단골집에 가깝다. 덕분에 여유롭고 차분하게 식사에만 집중할 수 있는 분위기다.

이곳의 순두부는 화려한 기교보다는 재료 본연의 맛에 충실하다. 몽글몽글하게 엉킨 하얀 순두부는 입안에 넣는 순간 부드럽게 흩어지며 진한 콩의 향을 남긴다. 슈퍼에서 파는 매끈한 두부와는 차원이 다른, 투박하지만 깊이 있는 고소함이 일품이다.
얼큰한 맛을 선호한다면 짬뽕 순두부를 선택하는 것도 좋다. 해산물이 들어가 시원하면서도 칼칼한 국물은 전날의 숙취를 단번에 씻어내 준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양념장 없이 하얀 순두부만 먼저 맛보기를 권한다. 따뜻한 두부 국물이 식도를 타고 넘어갈 때 느껴지는 온기가 여행의 피로를 사르르 녹여준다.
여행지에서 먹는 따뜻한 두부 한 그릇은 단순한 한 끼 이상의 위로를 건넨다. 자극적인 맛에 길들여진 미각을 정화해주고, 든든하게 채워진 배는 남은 여행 일정을 소화할 힘을 준다. 화려한 플레이팅은 없지만, 투박한 뚝배기에 담긴 뽀얀 두부야말로 강원도의 힘을 상징하는 음식이 아닐까.